2019년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Ad Astra)’는 우주 탐사라는 SF적 배경 안에, 인간의 감정, 정신건강, 존재론적 질문을 진지하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우주 환경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인간은 어떤 심리적 도전과 혼란을 겪게 되는가? 본 글에서는 영화 속 주인공 로이 맥브라이드의 여정을 따라가며, 스트레스, 외로움, 존재의 의미라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화와 실제 우주심리학 사이의 연결고리를 깊이 있게 탐색해 보겠습니다.
우주 환경이 주는 극한의 스트레스
우주 환경은 인간에게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이질적인 공간입니다. 영화 속 로이는 지구 궤도부터 화성, 해왕성까지 이어지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 과정은 단순히 신체적 인내심의 테스트가 아닌, 정교하게 관리된 감정 상태가 서서히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초반부에서 로이는 심박수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냉정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임무가 장기화되고, 예상하지 못한 사건과 죽음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그의 정신은 점차 균열을 보입니다.
실제 NASA와 유럽우주국(ESA)은 장기 우주 미션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매우 중요한 변수로 다룹니다. ISS에 6개월 이상 체류한 우주비행사들의 인터뷰와 연구에 따르면, 고립감, 반복되는 일상, 예측 불가능한 사고, 생존에 대한 압박은 우울과 불안을 유발하며, 이로 인해 의사결정 능력이 저하되거나 협업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됩니다.
특히 로이처럼 감정 억제가 강한 인물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내면에서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을 억제할수록 감정노동의 부담은 커지고, 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지속 분비로 이어져, 우울증, 기억력 저하, 집중력 장애로 발전한다는 것이 현대 정신의학의 분석입니다.
로이의 상황은 그러한 이론을 완벽히 뒷받침한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감정을 무시하고 통제했지만,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억눌렸던 감정이 분출되고, 결국 인간적인 붕괴와 회복의 과정을 동시에 겪게 됩니다. 이는 우주라는 비일상 공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인간의 본성인 고립과 외로움
우주는 인간을 철저히 고립된 상태로 만듭니다. 시공간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완벽한 단절이 일어납니다. 로이 맥브라이드가 겪는 고립은 단순히 혼자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류와도 단절돼 있고, 인간관계에서도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런 고립이 인간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로이는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의 존재를 좇으며 점점 더 깊은 우주로 향하지만, 그 여정은 곧 자기 자신과의 대면으로 바뀝니다. 심리학적으로, 장기 고립은 인간의 자기개념(self-concept) 자체를 해체시키는 위험 요소입니다. 실제로 남극이나 폐쇄 실험 시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장기간 체류한 이들의 보고에 따르면, 현실 감각의 저하, 감정 둔화, 대인관계 의욕 상실 등은 흔한 반응입니다.
로이는 이러한 반응을 정교하게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동료들과의 관계는 제한적이며, 감정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는 철저히 혼자이며, 그로 인해 점점 더 자신의 존재를 회의하게 됩니다.
특히 영화 후반부, 로이가 해왕성 궤도에서 아버지를 마주했을 때, 그는 모든 기대와 상상을 상실한 채 텅 빈 공간에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인간관계의 마지막 끈조차 부재할 때, 그는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와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 직면합니다.
고립은 단순한 환경적 상태가 아니다. 인간 존재 자체를 시험하는 심리적 상태입니다. 심리학자인 어빙 골드만은 "고립은 인간성 상실의 시작"이라고 표현했으며, 이는 애드 아스트라에서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로이는 외로움을 통해 고통받지만, 그 외로움이야말로 진정한 자아 발견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우주 속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
‘애드 아스트라’는 우주의 끝에서 인류 외 생명체를 찾는 아버지와, 가족과 연결되길 원했던 아들의 대비를 통해, 인간 존재의 방향성과 의미를 묻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과학적 진리를 좇아 인간관계를 포기한 인물이며, 로이는 그 반대의 길을 택하려 합니다. 이 대립은 단순한 부자 관계 이상의 상징성을 지닙니다.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부딪히며 살아갑니다. 이는 종교, 철학, 과학, 심리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핵심적인 물음입니다. ‘애드 아스트라’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강조한 ‘자기 선택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로이는 결국 아버지를 포기하고 지구로 돌아오는 선택을 합니다. 그 선택은 곧 ‘외부에서 의미를 찾는’ 여정이 아닌, ‘내면과 연결의 회복’을 택한 인간의 선택입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간은 의미를 찾기 위해 살아가며, 의미는 절망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로이의 여정은 바로 그 실례입닌다. 그는 절망의 끝, 우주의 가장 먼 곳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하고, 감정을 되찾고, 인간적인 회복을 시작합니다.
이 영화는 인간 존재를 단순한 과학적 대상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를 통해 완성되는 주체로 그려냅니다. 로이가 감정을 회복하고, 타인과 다시 관계를 맺으려는 의지를 보이게 될 때, 관객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