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봉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은 SF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현실적인 사회적 불안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어느 날부터 인류 전체가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 세계를 배경으로, 출산이 멈춘 지 18년이 지난 디스토피아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출산불능이라는 설정은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무거운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모습과 놀라운 접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칠드런 오브 맨'이 과학적으로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지, 그리고 출산과 인류 존속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경고의 메시지로 발전시켰는지에 대해 분석해 보겠습니다.
출산불능의 과학적 가정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설정은 “인류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영화 내에서 명확히 설명되지는 않지만, 이는 충분히 과학적으로 가능한 가정입니다.
현대 생식의학에서도 불임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남성 정자의 수와 활동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합니다. 2017년 발표된 한 글로벌 메타연구에서는 지난 40년간 서구 남성의 정자 수가 절반으로 감소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환경호르몬, 스트레스, 생활 습관, 식품 첨가물, 미세 플라스틱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칠드런 오브 맨은 이러한 현실의 연장선에서 ‘인류 전체 불임’이라는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상정한 것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영화 속에서 불임은 ‘질병’처럼 퍼진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원인 모르게 전 인류에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는 감염병이 아닌 환경적, 유전적, 혹은 진화적 차원의 위기를 암시합니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방사능 노출, 호르몬 교란물질의 급격한 축적, 바이러스성 생식기 면역질환 등은 전 지구적 불임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요소로 거론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런 사례가 없지만, 영화가 제기하는 “과학 기술로도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대재앙”이라는 설정은, 인간이 생명 현상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출산절벽 사회의 구조적 붕괴
영화는 출산이 멈춘 사회가 어떻게 붕괴되고, 정치와 경제, 문화가 어떤 식으로 해체되는지를 냉혹하게 묘사합니다. 교육기관이 사라지고, 유아용품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으며, 국가는 점차 전체주의화되어 갑니다. 정부는 난민을 격리하고, 시민들은 극단적인 무관심 속에서 서로를 경계합니다. 이러한 배경은 단순히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 저출산 사회에서 벌어지는 변화의 확대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2020년 이후 한국, 일본, 이탈리아 등 선진국들은 인구절벽이라는 용어로 불리는 극심한 출산율 저하를 겪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폐교, 노동력 부족, 고령화 사회의 지속이라는 문제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칠드런 오브 맨은 이러한 현상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여 보여주며, “인구가 사라질 때 사회는 과연 지속 가능한가?”라는 구조적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출산이 가능한 여성 ‘키’가 난민 출신이라는 설정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는 ‘생명’이 중심국가의 내부가 아닌, 사회적 경계와 차별 속에서 태어난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출산과 생명 유지를 위한 보호 시스템이 오히려 소외된 계층에 의해 유지된다는 설정은, 현대 사회가 가진 출산 정책의 실패와 불평등의 그림자를 드러냅니다.
인류 존속의 과학적 대비
영화 속 인류는 갑작스러운 생식기능의 상실에 아무런 대비책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연구소들은 문을 닫았고,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분석조차 하지 못한 채 희망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이는 현실적으로도 의미 있는 문제제기입니다. 현재 전 세계는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우주 탐사에는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지만, 생식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장기적 연구나 정책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2020년대 들어와 생식의학은 유전자 편집 기술(CRISPR), 인공자궁, 정자 생성 줄기세포 등 여러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지만, 기술과 윤리의 충돌로 인해 상용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특히 인간 생식 기능 자체가 멈춘다면, 인류는 복제 기술이나 유전자 저장소 같은 대안적 기술에 의존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는 이러한 대체 기술조차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는 “생명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호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현실의 과학은 어디까지 대비하고 있을까요? 영국과 일본, 한국의 일부 국립기관은 정자·난자 동결 은행, 생식 독성 감시 시스템, 환경호르몬 정책 연구소 등을 통해 미래 불임 사회에 대응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개별 기관 차원의 준비이며, ‘칠드런 오브 맨’이 경고한 수준의 전 지구적 재앙에는 아직 적극적인 대응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