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개봉한 일본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오해받은 평범한 남성 '가네코'가 겪는 고통스러운 형사 재판 과정을 통해, 일본 형사 사법 제도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무고’라는 문제를 윤리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시민의 인권, 사법의 공정성, 사회의 침묵이 억울한 사람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문에서는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인 혐의, 침묵, 법을 중심으로, 무고 사건이 사회 윤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보겠습니다.
혐의만으로 판단하는 사회
가네코는 영화 초반 단 한 마디 변명을 하지 못한 채 현행범으로 체포됩니다. 당시 그는 출근길 바쁜 출근 인파 속에서 지하철에 타고 있었고, 주변의 상황이나 사건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한 여학생의 신고 한 마디로 인해 인생이 뒤바뀌게 됩니다.
그는 경찰서에서부터 “자백하면 곧 풀려난다”는 회유를 받지만, 결백을 주장하며 이를 거부합니다. 그 순간부터 가네코는 형사절차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끼여 점점 더 깊은 고통에 빠져들게 됩니다.
문제는 그가 피의자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그를 유죄로 간주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회사는 그를 징계하고 해고하며, 가족조차 처음에는 혼란스러워하고, 친구와 동료들도 그를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반응은 현대 사회에서 혐의만으로도 충분히 개인을 ‘범죄자’로 몰아갈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현상은 '무죄 추정의 원칙'이 명문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유죄 추정’이 일반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영화 속에서는 검사도, 판사도, 심지어 공공변호인조차 “이런 사건은 거의 다 유죄가 나옵니다”라고 말하며 자백을 유도합니다. 윤리적으로, 그리고 법률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고 사건의 피해자는 단순히 억울한 일을 겪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혐의만으로도 삶 전체가 붕괴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혐의를 받았다’는 사실과 ‘죄를 지었다’는 판단 사이에 윤리적 경계선을 분명히 해야 하며, 법적 절차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영화는 강하게 주장합니다.
침묵은 방조가 되는가
가네코 사건에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침묵'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하철 안에는 수많은 승객이 있었지만, 사건 직후 그 누구도 나서서 그의 결백을 증언하거나, 그를 돕지 않습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도 증인이 되어줄 수 있는 몇몇 인물들조차, ‘귀찮다’ 거나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증언을 거부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방관이 아닌, 무고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책임의 부재’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심리학적으로 사람들은 ‘책임 분산’이라는 심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이 함께 있는 상황일수록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줄어들고, 적극적인 행동을 피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영화 속 군중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구 하나 확실히 행동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데 일조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침묵은 결국 무고가 벌어지는 구조를 강화합니다.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서는 주변인의 용기 있는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용기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을 보며 사회적 윤리가 과연 무엇인지 자문해보게 됩니다.
‘내 일이 아니니까 괜찮다’, ‘불이익이 있을까 봐 조용히 있자’라는 생각은 무고 사건뿐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 학교폭력, 온라인 명예훼손 등 다양한 현실의 억울한 사건들을 침묵 속에 방치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영화는 이런 침묵을 ‘윤리의 방기’로 해석하며, 침묵도 또 다른 책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환기합니다. 우리가 진정 윤리적인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용기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법은 정의를 위한가, 절차를 위한가?
가네코는 억울함을 풀기 위해 끝까지 싸웁니다. 그는 자백하지 않고, 변호사를 선임해 증거를 수집하고, 증인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의 싸움은 매우 외롭고, 고통스럽고, 길고 지치는 과정입니다. 일본의 형사사법 시스템은 ‘기소된 이상 거의 유죄’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며, 무죄를 입증하는 책임은 온전히 피고인에게 부과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발생합니다. 영화 속 재판은 실질적인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절차를 지키고, 판례에 따라 기계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법이 도덕적 기준이나 인간 중심의 시각이 아닌, 시스템으로만 작동하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드러냅니다.
윤리적으로 볼 때, 법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법이 때때로 그 기능을 상실하고, 절차와 통계에 갇혀 ‘정의의 반대편’에 설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합니다.
더 나아가 이 영화는 법적 시스템 안에서 일하는 검사, 판사, 경찰, 변호사 모두가 자신이 맡은 ‘역할’에만 집중할 때, 전체 구조가 얼마나 비윤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정의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정의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의 양심과 행동이라는 점을 영화는 끝내 강조합니다.